티스토리 뷰
목차
다양한 영화를 보다 보면 장르에 따라 영화가 의미하고자 하는 주제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특히 잔잔하게 흘러가는 영화는 겉으로 보기엔 호수에 있는 고요한 물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폭풍이 휘몰아치는 바다인 경우도 많습니다. 이런 영화들의 묵직한 공통점은 한 단어로 설명할 수 있는 명확한 명제가 있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한국인이라면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문장을 모를 수가 없습니다. 이번에 살펴볼 영화는 ‘인연’이라는 단어가 영화의 모든 것을 말합니다. "패스트 라이브즈"가 많은 권위가 있는 영화제에서 많은 부분에 후보지명 되었다는 것은 특히나 이런 인간관계의 복합성을 잘 표현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과거 영화 “미나리”로 많은 이목을 끌고 현재 호평받는 영화감독이 된 셀린 송이 연출한 “패스트 라이브즈”는 외국으로의 이민으로 이별한 후 수십 년이 지나서야 재회한 두 명의 친구 노라와 해성을 중심으로 흘러갑니다. 이 영화의 중심에는 ‘인연’이라는 단어가 깊게 자리 잡고 있으며 이 단어는 운명, 서로의 연결을 뜻하기도 합니다. 송 감독은 이 단어를 주제로 영화의 중심을 잡았고, 이야기가 진행되는 장치로도 활용하여 관객들이 시공간을 초월하는 인간관계 즉 연결성의 깊이를 생각해 볼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과거와 현재를 잇는 단어 인연
"패스트 라이브즈"에서는 인연의 개념을 먼저 드러내어 전체의 분위기를 만들어냅니다. 연출 관점에서 감독 셀린 송은 인연을 단순한 문화적 개념이 아니라 스토리텔링의 매개로 사용합니다. 영화의 이야기는 인물들이 공유하는 과거의 기억을 함께 나누며 되돌아보는 장면들을 다수 보여주며, 이는 두 사람의 재회가 우연히 만난 것이 아니며 더 깊고 신비로운 운명의 결과임을 보여줍니다. 송 감독의 연출력은 소품, 조명 등의 시각적 장치와 대사를 통해 이 순간들을 자연스럽게 지속적으로 노출하여 관객들이 이런 점을 꾸준히 상기할 수 있는 분위기와 흐름을 만들어냅니다. 영화 전반에 걸쳐 물과 반사, 같은 색감의 반복적인 사용, 인물이 서 있는 구도의 반복 등의 시각적 반복성을 통해 시간 흐름과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의 물결이 현재로 흘러간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장치들은 관객들이 인물들의 방향성이 ‘인연’이라는 운명에 의해 자신도 모르게 흘러가는지 아니면 자신의 선택으로 나아가는지를 생각하도록 만듭니다. 이를 통해 송 감독은 관객들을 장면 속으로 끌어당겨 두 인물이 겪는 상호 연결의 핵심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고 보이지 않는 실로 연결된 사람의 운명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합니다.
인연의 의미와 울림
송 감독의 ‘인연’이라는 개념의 사용은 서사적 장치를 넘어 운명과 인간관계에 대한 다양한 관점 차이의 오작교(다리) 역할도 합니다. 영화는 동양 특히 한국의 문화와 인간관계라는 보편적인 관점 사이를 이으며 특유의 균형감으로 전 세계의 관객들이 영화에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합니다. ‘인연’이라는 단어에 집중하는 감독은 "만약 삶이 이렇게 흘러갔다면 어떤 결과가 생겼을까?"에 대해 의문과 반성을 품는 질문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더 깊은 공감을 가능하게 합니다. 영화 내내 이 개념을 사용하며 인물들의 복잡한 감정선을 생각하는데, 특히 그들이 선택한 길과 선택하지 않은 길을 되돌아보는 장면에서 특히 이런 후회와 선택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런 장면은 단순히 표면적인 선택의 결과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인물들이 겪었던 혹은 겪는 두려움, 후회 및 희망을 드러내는 영화의 핵심입니다. 이런 방식을 통해 감독인 셀린 송은 서사에 더 깊은 층을 더해서 두 사람의 관계뿐 아니라 운명의 본질과 개인의 삶을 정의하는 선택에 성찰하게 만듭니다. 이런 묵직함은 송 감독의 섬세한 연출력과 더불어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로 조화되어 관객들에게 큰 영감과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시각적 스토리텔링과 편집 방식
인연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영화 장면을 통해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감독의 능력은 찬사 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섬세한 색감을 사용함으로써 ‘인연’이라는 개념 즉 운명적인 연결에 대한 감독의 생각을 보여줍니다. 송 감독은 등장인물이 각각 행동하는 장면, 개인의 이야기가 흘러가는 장면들을 더 큰 흐름과 엮어냄으로써 주제를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런 방식이 가장 크게 드러나는 장면은 서로 다른 나라에서 생활하는 노라와 해성의 일생을 묘사하는 장면입니다. 서로 사이에 크게 존재하는 물리적인 거리에도 불구하고 감독의 연출은 관객들이 두 인물이 심리적으로 가까운 연결성을 느끼도록 장면을 엮어내고 있습니다. 이 장면들에서 두 사람의 거리는 멀고 삶 또한 비록 별개이지만 그 둘의 삶이 인연에 의해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강력하게 드러냅니다. 이런 영화의 대칭적인 편집방식은 과거와 현재, 현실과 기억이 함께하는 전환 방식으로 이런 심리적인 연결성을 강화하여 시간이 흐르며 두 사람의 유대감이 더욱 깊어진다는 점을 강조하는 이야기 흐름을 만들어냅니다.
"패스트 라이브즈"는 감독이 문화적인 개념을 활용해 서사를 높이고 관객의 영화에 대한 심리적 참여도를 높인 훌륭한 수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셀린 송 감독의 ‘인연’은 단순한 주제가 아니라 영화의 구조와 속도, 정서의 톤을 만드는 훌륭한 연출 전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송 감독은 운명과 인연이라는 관계에 대한 의미를 편집이라는 장치에 훌륭하게 재구성해서 관람하는 사람들 모두의 마음에 울리는 영화를 만들었고, 관객들이 삶을 살아가며 이끌리는 ‘운명’이라는 보이지 않는 힘에 대해 생각할 수 있도록 합니다. 그렇게 "패스트 라이브즈"는 단순한 영화가 아닌 우리 모두를 엮어내는 운명 즉 ‘인연’을 사람들의 마음에 깊이 남겼습니다.